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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khl
    3월 14일

    [아름다운 터치] 막 5:25-34

    게시판: 이번주 설교

    [아름다운 터치] 막 5:25-34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길고 길었던 코로나 시대가 이제 끝이 오는듯 합니다. 각 나라들마다 규제를 완화시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며 with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타리오 정부도 그동안 시행되던 규제를 완화하고 3월21일부터는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가 됩니다. 교회도 그 동안 함께 모여 예배 드리지 못하고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이제 오늘부터 다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이시간 주님의 은혜가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던 생활이 다시 회복되듯이 우리의 믿음과 신앙도 회복되고 더 열심히, 더 뜨겁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나태하고 게을러졌던 마음들을 다시 추스려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도, 그리고 주님이 사랑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터치’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업로드 되는 설교를 묵상하고 그 말씀을 통해 가정 예배를 드리신 분들은 아마도 짐작할 수 있었을 겁니다. 지난 3주 전부터 감각(sense)에 빗대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주님의 음성’듣기 였습니다. 듣는 것, 청각에 비유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 주가 ‘보이는 것과 보아야 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보는 것, 시각에 비유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가 ‘맛있는 것과 먹어야 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먹는 것과 관련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촉각, 터치에 관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에는 12년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혈루증이라고 하면 현대적인 표현으로 만성 자궁출혈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여인의 몸에서 피가 불규칙하게 나오고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레위기 15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규례에 의하면 이 여인은 불결하고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본문에 의하면, 여러 의원을 찾아가고 많은 돈을 써서 병을 고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주님을 찾아가고 주님의 옷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게 됩니다. 터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인은 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본문 34절에서 여인의 믿음까지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터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여인의 이러한 터치를 아름다운 터치라 부르고 싶습니다. 여인이 행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터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여인은 자신의 병도 낫고 주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는 아름다운 터치가 가능했는지 그것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여인이 아름다운 터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손을 내밀지 않고 어떻게 터치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 때, 거기에서부터 아름다운 터치는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그 여인을 부정한 여인으로, 불결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멸시하는 시선을 보냈을 겁니다. 사람들이 주님에게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수도 있고, 틈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주님에게 나아가는 길이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팔을 뻗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아름다운 터치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제가 얼마 전에도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드렸지만, 내 몫이 있고 주님의 몫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가지 않고,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아름다운 터치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 터치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인정받고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할 일, 내 몫은 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이루실 일을 기다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내 몫을 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손을 내밀지도 않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를 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여인처럼 우리도 주님께 먼저 나아가야 합니다.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일단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수 있습니까? 바로 예배를 통해 주님께 손을 내밀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수 있는 거에요.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겁니다. 선한 마음과 행동을 통해 주님께 손을 내미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를 원합니다. 은혜가 내 인생속에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모순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야 옷자락을 만지고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에 참여하고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며 나아갈 때 주님과 닿을 수가 있는 겁니다. 내 몫을 다 할 때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수 있는거에요. 아름다운 터치가 일어나고 내 믿음을 인정받고 주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에도 아름다운 터치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적으로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때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세요. 예배 빠지고 싶을 때, 아 내가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기도가 잘 안될 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서 기도하세요.

    두 번째로, 본문의 여인이 주님을 향해 아름다운 터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 여인은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낫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주님을 향해 내 민 손은 보통 손이 아니에요. 믿음으로 내민 손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면, 주님곁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얌전히 주님곁에 있지는 않았을 거에요. 주님에게 손을 내밀고 주님의 옷이며 몸이며 터치하려던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유독 이 여인에게만 기적이 일어나고 치유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여인은 믿음으로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옷을 만졌기에 아름다운 터치가 되었던 거에요. 여러분, 매 주일마다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립니다. 이곳에도 여러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예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주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에요. 그런데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고 터치는 했지만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아름다운 터치가 될 수 없는 겁니다. 예배의 현장에 나오고 다 같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여러분 속에 믿음이 없다면, 믿음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향해 손을 내밀듯 예배에 참여했다면, 여러분 믿음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다면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찬양을 부를 때도 믿음으로 고백하며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합니다. 아름다운 터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도 받고 칭찬도 받는 것이에요. 주님을 향해 나아가고 손을 내밀기도 하고 실제로 주님의 향해 터치를 했는데 그러나 믿음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일 겁니다. 마치 산을 등반해서 올라갔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온 것과 같아요. 남들이 산의 정상이 어떻다고 얘기해도 나는 알 수가 없어요. 산위에서 보는 풍경이 어떻고 산 위의 바람이 어떻고 말해도 알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정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노력은 한 것 같은데 뭔가 성과가 없다는 거에요. 이게 찝찝한 겁니다. 뭔가 하긴 했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마찬가지로 교회에 나오고 예배도 드렸는데, 주님께 손도 내밀고 옷자락을 만진 것도 같은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왜? 믿음이 없이 손을 내밀기 때문에 그래요. 믿음이 없이 예배에 참여하고 믿음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2월 첫 주에 설교한 본문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산에 올라가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십니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산에 올라가지 않은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는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하신 것처럼 기도도 하고 안수도 하고 뭐 여러 가지를 했지만 그러나 아이를 고칠 수 없었어요. 결국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셔서 그 아이를 고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주님께 조용히 묻습니다. 왜 자신들은 아이를 고치지 못했는지.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다시 말해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의아했을 겁니다. 분명 자기들도 기도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를 향해 기도도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의문이 들었을 거에요.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에요. 사실 그 본문은 믿음에 관한 말씀인데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를 향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말씀하셨어요.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