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시는 주님] 계 2:8-11
오늘은 4월 셋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주에는 한 가지 책망 받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신앙을 위해 수고하고 인내하고 게으르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악하고 거짓된 자들을 구별하였고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책망받을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간직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을 간직하는 것처럼 비록 부활절은 지났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늘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두 번째 교회, 서머나 교회를 향한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스탄불, 앙카라와 함께 터키의 3대 도시인 이즈미르 지역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무역과 상업이 성행했던 곳으로서 크고 웅장한 도시였습니다. 큰 도시답게 인구도 많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종교적으로는 정통 유대교를 섬기는 이들과 로마 황제를 섬기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박았던 곳입니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았던 초대교회 교인들의 박해처럼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온갖 고난을 당하고 목숨을 던져야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편안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오늘 본문을 만나게 되지만, 그러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믿음을 간직한다는 이유로 모진 고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당시 배경을 이해하고 성경을 볼 때, 말씀의 의미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특별히 주님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의 믿음과 고백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의 현장에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고백한다는 이유만으로 고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내가 믿는 분이 주님이 맞는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어쩌면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들 중에는 믿음을 저버린 이도 생겼을 것이고 신앙이 변해버린 이들도 생겼을 겁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던 주님을 향한 고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아가며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때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끝까지 지키고 간직했던 신앙이 변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유혹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향해 우리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주님이 처음과 나중되시고 죽음도 이기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은 단순히 서머나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힘든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시는 확신의 말씀입니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시험을 즐기게 됩니다. 학생 시절에 시험지를 받고 알고 확신하는 문제가 나오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고민할 이유도 없고 막힘없이 답안지를 채워나갔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어떻습니까? 한참을 고민하고 썼던 답을 지우고 고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무 번호나 찍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확신하고 있다면, 어떤 시험도 두렵지 않습니다. 고민할 이유도 없고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때론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인내하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고민하고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걷고 있던 삶의 길도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도 하고 갈팡질팡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본문에서 주님께서 스스로를 그렇게 밝히시는 이유는 서머나 교회, 그리고 본문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인생의 답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고난받고 있고 시험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처음과 나중이시고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힘든 순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9절 이하에 보면,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고난을 받을 것과 그 고난을 두려워 말고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스스로를 밝히신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과 앞으로 당할 고난까지도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들었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주님이 다 알고 계시다는 말씀에 아마도 큰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알고 있다는 것은 보고 있다는 것이고 보고 있다는 것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 외롭고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알고, 보고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고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사실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책망받지 않은 교회, 혹은 칭찬만 받은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을 칭찬과 책망이라는 이분법적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위로입니다. 주님이 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고 함께 하고 계신다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것보다 더한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다 알고 계시는 주님, 보고 계시는 주님, 그리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떠올리며 가슴이 따뜻하고 힘과 용기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서마나 교회는 그러기에 칭찬만 받은 교회로 알려지기보다는 위로받은 교회로 알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처럼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주시며 그들이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모두에게도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힘과 용기를 내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모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상을 빼앗기고 사람들과 여전히 단절되며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어려움도 있고 건강의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코로나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 보낸 분들도 계시고, 힘들게 투병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과연 이러한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깨달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주님을 확신하며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나가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바라보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주님이 주시는 위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한주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새길교회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