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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KC
    2021년 6월 06일

    2020년 6월 6일 [깊은 곳 까지]

    게시판: 이번주 설교

    [깊은 곳까지] 계 2:18-29


    오늘은 6월 첫 주일입니다. 6월 한달도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며 믿음 안에서 기쁘고 감사가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과 가족에 관한 말씀들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리고 5월 이전에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눴는데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에 이어서 오늘은 네 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있던 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크지 않은 작은 소도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수공업 형태의 작은 공장들이 있었습니다. 19절 말씀에 보면,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말씀하십니다. 비록 작은 형태의 사업들이었지만 단순히 사업이나 세상적인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믿음의 모습도 간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의 행위가 많아지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는데 그것은 이세벨의 이방 사상을 용납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행음하였기때문입니다. 사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세벨이 아합왕의 왕후로 바알을 숭배하고 이방 사상을 전했던 그 이세벨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와 성도가 주님의 뜻이 아닌 이단의 사상을 따르고 그들의 가르침대로 행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이유로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시는 말씀은 단순히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믿는 주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시고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행음이나 간음등의 단어는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시 바알이나 이방 종교의 행위 속에는 성전에서 행해지는 성적인 행위들이 있었고 그것을 의미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뜻을 붙잡아야 할 성도가 다른 사상과 세상의 것들에 현혹되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성도이지만 마음 속에는 잘못된 사상과 온갖 더럽고 추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마치 다른 여자나 남자와 동침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이나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기에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판단합니다. 그러기에 비록 잘못된 사상이나 세상의 유혹들이 내 속에 가득해도 겉으로 아닌척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의 행위가 처음보다 나아졌고 믿음의 모습들이 좋아보이지만 그러나 사실 그들은 마음과 뜻으로 주님을 붙잡고 있기보다는 이방의 사상과 이단의 행위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주님을 소개하며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소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말씀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은 주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사실 성경에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주님께서 성전에서 헌금하시는 이들을 보십니다. 그리고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의 적은 헌금이 오히려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 깊은 곳까지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비록 다른 이들보다 적은 액수이지만 마음과 정성을 다 해서 드려진 헌금을 칭찬하신 겁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서 죽이라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어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땅에 뭔가를 쓰셨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쓰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거기 모인 사람들의 죄를 쓰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 마음 속에 가득한 음란하고 추한 것들 쓰셨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사라졌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전하는 것은 간음한 행위가 잘 한 것이라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이의 죄를 지적하며 겉으로는 의인이고 바른 모습으로 보여지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속사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위선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신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말씀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혹여 우리도 겉으로는 바른 신앙인이고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듯 하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는 주님의 말씀과 뜻이 아닌 세상의 것들과 죄로 가득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아닌척 잘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겉을 치장하고 꾸미기에 앞서서 우리 스스로의 마음과 뜻을 가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내면의 깊은 곳까지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어렵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주님이 우리를 들여다 보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모두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 앞에 회개하고 새로워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가꾸고 주님의 말씀과 뜻을 붙잡고 나아간다면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더 큰 용기와 힘을 채워 주실 겁니다. 새로운 달 6월에는 더욱 내면을 가꾸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겉 모습은 늙어가고 초라해지더라도 내면은, 속 사람은 변화되고 성장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깊은 곳까지 보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말씀과 주님의 뜻으로 채워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찬양이 있습니다. ‘주를 찬양’인데 6월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 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주와 함께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주를 찬양>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수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때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찬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