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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3월 09일

    2020년 3월 8일 [주님의 은혜]

    게시판: 이번주 설교

    주님의 은혜 / 막 5:1-4


    오늘도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말씀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는 어느 분이 겨울이 언제 끝나고 겨울 코트는 언제쯤 벗게 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겨울이 끝날 것 같으면서도 추위가 계속되고, 눈이 내리는 날씨에 아마도 겨울이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오늘은 날씨도 맑고 거짓말처럼 기온이 10도 이상 올라갔습니다.. 이제 아마도 코트를 벗고 봄을 경험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아무리 길게 느껴진 겨울도 결국에는 끝이 나고 지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지만, 매번 겨울이 되면 언제쯤 지나갈까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결국에는 지나가고 끝이 나는데 우리는 늘 불안함과 조바심 속에서 살아가는 듯합니다. 마치 계절이 변하듯이 결국에는 이 모든 시간들이 지나갑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것 또한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너무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또 다른 시간을 기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힘들어 하고 불안해 합니다. 분명 이것 역시 지나가고 끝이 날겁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좀 더 차분히 기도하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오늘은 주님의 은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주님이 은혜를 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명제가 되어서 많이 듣고 익숙한 나머지, 우리에게 더 이상 깊은 감동이 되거나 감사가 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깨닫고 주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의 은혜 - 찾아오시는 은혜

     먼저 오늘 본문에서 전하는 주님의 은혜는 찾아오시는 은혜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주님의 은혜라 하면, 죽을 병에서 낫는다든지,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기거나 바라는 것들이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주님의 은혜는 보다 근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거라사 지역에서 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무덤에서 살고 있고, 사람들이 그를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그의 가족조차도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그 한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성경에서 그는 주님을 통해 온전해 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성경은 주님이 그를 낫게 하셨다는 것보다 먼저 우리에게 주님이 그를 찾아 가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신분이 낮거나 뭔가 필요한 사람이 누군가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아무도 찾지

    않고, 버림받은 거라사 지역의 사람에게까지 찾아가십니다. 그가 있는 곳은 이방인의 땅이었고, 그의 거처는 당시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겼던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곳까지 찾아가십니다. 사실 성경에서 보여지는 주님의 모습은 늘 어디론가 누군가를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갈릴리 어부들을 찾아가시고 우물가의 여인을 찾아가시고, 귀신들린 아이를 찾아가시고, 세리를 찾아가시고.... 성경속에서 보여지는 주님의 모습은 늘 어디론가 가시는 모습입니다. 가만히 계셔서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흩어진 제자들에게 찾아가시고, 다시 갈릴리로 간 베드로를 찾아가십니다. 성경이 끝임 없이 전하는 것은 주님은 늘 찾아 가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우리가 깨닫고 경험해야 할 주님의 은혜는 바로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입니다. 나를 돌아보면, 신앙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이 많은데 주님은 그런 나에게까지 찾아오십니다. 버려지고 홀로 떨어져 외로워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은혜입니까? 우리가 아직은 젊고 아직은 혈기가 있어서 잘 모르지만, 가끔 은퇴하신 목사님이나 연세가 있으신 목사님들을 찾아 가면, 항상 그 분들이 말씀 하시는 것이 있어요. 찾아와 줘서 고마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찾아 가면,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십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점점 외로워지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인생을 오래 사신 이후에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찾아오는 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젊을 때는 잘 몰라서 누군가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못하는데 점점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자체가 고맙고 감사하는 겁니다. 그리운 사람, 반가운 사람이 내게 기꺼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데, 내가 믿고 내가 고백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은혜입니까? 거라사 지역의 귀신들린 사람은 조건으로 봤을 때, 도저히 주님을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방 땅에 있는 이방인이었고, 귀신들린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도무지 이 사람이 주님을 만날 방법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님이 그에게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기꺼이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도무지 내가 조건으로 보면, 주님을 만날 방법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우리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을 통해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외롭고 힘든 내 마음속에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제가 지난주에 쓴 믿음의 글에서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라는 책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연히 예수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닉이라는 사람이 제가 다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나요? 라고 주님에게 질문합니다. 주님은 성경구절을 적어주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20절 말씀인데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나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내가 문을 열고 만나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은혜에요. 공평하게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 음성에 마음을 열고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의 은혜 - 회복의 은혜

     두 번째로, 주님의 은혜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을 성경은 귀신들린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에게서 나오는 힘이나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행동은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이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에게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 속에 존재해야 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그의 힘이 되어서 그를 마음대로 휘젓고 있는 겁니다. 결국에는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고 자신의 인생이 버려지게 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주님은 그의 모습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속에 존재하는 귀신들을 내쫓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더 이상 악한 마음과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몸과 인생을 허비하지 않도록 주님이 은혜를 주신 겁니다.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두 번째 은혜입니다. 이 일을 통해 그에게 돈이 생기거나 명예가 생기거나 무슨 큰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겁니다. 성경은 이것이 주님의 은혜라 말합니다. 사실 이것이 다 연관이 있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도 은혜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5장에서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왔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가 전해졌다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죄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이 오셨고 그 분이 우리의 모습을 회복시키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바울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스스로가 주님의 회복의 은혜를 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 변화되고 회복되기 전에 그는 자신의 신념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그의 눈을 멀게 하시고 오로지 주님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세상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주님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주님의 은혜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능력이 아니었으면, 그의 인생은 죄 가운데 있고, 세상의 욕심과 악한 힘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되어 결국 배설물처럼 헛된 인생이 되었을 거라 고백합니다. 제가 오늘 주보에 실은 믿음의 글에도 언급을 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사람들 속에 있는 잘못된 본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위기에 서로 돕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보다 나만을 생각하고 내 이익만을 챙기고, 분노와 조롱을 사람들에게 퍼붓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이러스만 퍼지는 것도 힘든데 잘못된 우리의 본성이 사람들 속에 드러나는 것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마치 귀신들린 사람처럼 추악한 우리의 본성이 보여지고 우리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만큼 우리의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악해져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는 모습이 되는 듯합니다. 몇 주 전에는 영국에서 동양인 학생이 백인

    학생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지난주에는 뉴욕에서 한 흑인이 동양인 학생에게 탈취제를

    뿌렸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 이유가 없어요. 단지 우리 속에 있는 나쁜 본성, 죄의

    마음이 표출이 되는 겁니다. 마치 힘센 귀신처럼 말과 행동을 조정하는 거에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속에 이런 그릇된 마음과 나쁜 본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리 밖으로 표출이 되고,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스스로 자꾸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을 잃어가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쩌면 오늘 성경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죄에 사로잡히고,

    여전히 세상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거라사

    지역에 살고 있는 귀신들린 사람에게 찾아오시고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그의 가족에게 돌아가고, 그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귀한


    일군이 됩니다. 그 이후에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상상해 보면, 그는

    살아가면서 한 가지 만큼은 기억하며 살아갔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에게

    찾아오시고, 그를 회복시키신 주님의 은혜 만큼은 평생 기억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회복된

    그의 인생이 다시 죄와 잘못된 본성에 붙잡혀 사는 인생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의

    속에서 죄와 그릇된 본성이 그를 지배하려고 할 때마다 그는 주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이겨나갔을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사람처럼 주님이 찾아오시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회복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사람처럼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를 회복시키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속에

    자꾸 잘못된 마음과 본성이 올라올 때마다 주님의 은혜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주님의 은혜 - 귀하게 여기시는 은혜

    마지막으로, 주님의 은혜는 귀하게 여기시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천하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주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이 사람 속에 있는 귀신들을

    돼지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돼지 떼가 바다에 빠져 모두 죽었다 기록합니다. 성경에서는

    굳이 그 돼지의 수가 이천 마리였다고 전합니다. 다시 말해, 그 한 사람을 위해 돼지 이천 마리를

    포기하신 겁니다. 주님의 저울을 놓고 본다면, 돼지 이천 마리보다 그 한 사람이 더 무겁고

    귀하다는 겁니다. 돼지 이천 마리의 값은 꽤 비쌌을 겁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 되어서 비싸고

    어마어마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셨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귀신들린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돼지 이천 마리가

    아니라 단 한 마리를 이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르십니다.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야할 주님의 은혜라 말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비록 주님이 보시기에 온전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주님과 멀어졌어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마음, 그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망설임 없이 이 사람을 위해 돼지 이천 마리를 포기하신 것처럼,

    주님은 나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시고 나를 회복시키신 이유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힘든 문제 속에서도 좌절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닐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깨닫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 딜레마’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가까이 안으며 온기를 느끼려고 해도 가시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는

    겁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사회가 관계를 형성할수록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그러기에 관계에 있어서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고슴도치 딜레마처럼,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의 가시가 있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누군가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모두가 떠나고 버려진 이 사람을 품어주신 것처럼, 주님은 비록 내 속에

    가시가 있어서 찔리고 상처가 나도 보듬어 주시고 안아주십니다. 우리를 귀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 한 주간 또 세상 속에 살아가며, 상처받고 상처를 주며 살 수도 있습니다. 점점

    고립되고 외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 꼭 기억하시고 마음이 외롭고 불편할

    때 마다 여전히 나를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여전히 우리 속에 넘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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