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 / 마태복음 5:13-16
오늘은 3월 1일입니다. 3월의 첫 날에 함께 예배 드리는 모든 성도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절기로는 경칩이 3월5일입니다. 이제 기나긴 겨울도 끝을 향해 나아가는 듯합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듯이 움츠렸던 우리의 신앙도 다시 힘을 내는 3월 한 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첫 주 예배를 통해 은혜 받고 힘을 얻어서 3월 한 달도 믿음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는 설교를 준비하며 참 많이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이번 주에 담겨진 중요한 의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3월 1일입니다. 1919년 한국이 일제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반 시민들이 비폭력 독립항쟁을 한 날입니다.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인들도 함께 참여했고,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일제식민지의 부당함을 알리고 민족의 힘을 보여주고, 이후에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열사들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그 후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일파의 후손들이 정치와 경제, 언론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에 삼일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오늘 3월 1일은 우리에게 더욱 무겁고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오늘은 사순절 첫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 기간인데,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우리 속에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자 주님이 오셨기에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순절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삼일절과 사순절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적으로,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급속히 번진 코로나19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에 뉴스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 내에서 급속도로 퍼지게 된 것을 전해 들으셨을 겁니다. 현재까지 확진자가 3,736명, 사망자가 18명입니다. 잘 잡혀가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문제가 한국에서 급속하게 퍼지게 된 원인에는 신천지라는 이단종파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신천지 일원인 것을 감추고 기존 교회와 성도들에게 파고들어 사람들을 신천지로 끌어들이는 그들의 방식 때문에 정확한 집계와 대책이 어렵고, 그 만큼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적인 재난과 위기상황임에도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정치권은 4월 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해서 정쟁의 수단으로만 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집회와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권고와 서울시에서 집회를 불허했음에도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람들은 집회를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결국에는 집회를 이번 주에 하지 않았지만, 전광훈 목사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있던 병도 집회에 참여하면 낫게 된다’ 등의 말로 하나님을 앞세워 집회를 강행하려 했습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주, 그리고 역사적으로, 신앙적으로 의미 있는 오늘 주일 말씀을 준비하며 목회자로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교회와 사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시고 바른 신앙과 믿음의 성도, 그리고 교회가 되기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인이 희귀한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사는 마을에서 한 약사가 그 암을 치료할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을 개발했다. 약사는 그 약을 만들기 위해 200달러를 투자했으며, 약 한 알에 2,000달러의 가격을 책정하였다. 죽어가는 부인의 남편 하인츠 씨는 있는 힘을 다해 돈을 융통하고자 애썼지만, 결국 1,000달러 정도밖에는 모으지 못했다. 하인츠 씨는 약사를 찾아가서 아내가 죽어가고 있으니 제발 약값을 절반으로 깎아 달라고 애걸했지만, 약사는 이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머지 절반을 갚겠다는 요청까지도 거절하였다. 절망한 하인츠 씨는 결국 그날 밤 약사의 연구실에 침입하여 신약을 훔치게 되었다. 하인츠 씨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또는, 왜 그래서는 안 되었을까? 그의 판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마도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 일겁니다. 이것은 발달심리학자 L.Kohlberg(1983)가 인간
도덕성의 발달단계를 제시하면서 만든 가설적인 딜레마입니다. 일명 ‘하인츠 딜레마’라고도 불립니다. 콜버그의 단계별 도덕발달에 관해서는 제가 지금 이야기 할 것은 아니고, 다만, 이것은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며, 무엇을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로 여기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통해 우리는 사회 속에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하인츠의 딜레마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의 판단과 결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른 판단의 기준과 가치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하인츠 딜레마를 떠오르게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신천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급속히 전파되는 상황 속에서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된 것은 바로 교회의 주일 예배였습니다. 확진자가 발생한 교회를 포함해 몇몇 대형 교회들이 당분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예배로 대처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몇몇 대형교회는 이것을 반대하며 교회에서의 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이 부분에 있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많이 본 기사 1위로 ‘개신교가 주일 예배 중단 꺼리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이번 코로나19사태를 통해 중앙의 통제력이 강한 천주교나 불교에서 집회나 모임을 제한한 것과는 다르게 각 교회의 권한이 강한 개신교의 특성상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기사였습니다. 부천의 교회 목사님은 인터뷰에서 "구약 십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지금의 주일 개념이 됐다"며 "구원받은 사람들은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예배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계속해서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며 "교회는 주일 예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일
예배 중단은 사실 타협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영락교회는 26일 주일 예배 고수를 재확인하는 서신에서 "지금까지 교회가 예배를 중단한 경우는 없었다"며 "예배 중단은 교회의 첫째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교회가 예배를 중단 하는 일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보다 더 바른 기준과 가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먼저, 교회는 사회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경우를제외하고 교회는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는 결코 사회와 분리된 단체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말해줍니다.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이끌고 또 섬겨야 합니다. 교회와 기독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모든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교회와 성도의 역할입니다. 예수님도 사회 속으로 오셨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나 기독교인들만 따로 저 멀리 불러놓고 그들만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 오셔서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 받으신 것을 제외하면, 예수님은 늘 사회 속에 계셨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시고 그들을 섬기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가시는데, 그곳에서 주님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형됩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주님이 그들과 함께 대화 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께 그곳에서 초막을 짓고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영광스럽고, 거룩한 모습을 뒤로하고, 주님은 세상으로, 사회 속으로 내려오신 겁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있어야 할 곳은 외딴 산속이 아니라 사회 속이고, 그리고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