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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3월 17일
      ·  수정: 2020년 3월 17일

    2020년 3월 15일 [두 주인공]

    게시판: 이번주 설교

    두 주인공 / 막 11:1-3, 12-14


     오늘은 3월 셋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려 오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하며, 주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코로나19사태가 중국과 한국, 아시아를 넘어 이제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캐나다에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트뤼도 총리의 아내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로 인해 총리까지 자가 격리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사람들 많은 시간을 피하느라 일부러 문을 닫기 30분 전 즈음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고, 이미 고기와 물과 같은 일부 품목들은 다 팔려 비어 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아이들 방학에 두 주를 더해서 온타리오 public school은 총 3주를 쉬게 됩니다. 대부분의 대학들도 그 기간에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게 됩니다. 단순히 학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간에 도서관과 각종 공공기관들도 문을 닫고 코로나 확산을 막고자 합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믿음의 사람들로서 모두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협력해야 할 때입니다. 손 씻는 것을 비롯한 개인적인 위생관리에 신경 쓰시고, 대면접촉이나 모임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발열이나 기침 등과 같은 감기 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시고, 여행을 다녀오시거나 의심환자와 접촉하신 분들도 2주간은 상태를 보며 집에서 예배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250명 이상 되는 모임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고에 따라 대형교회들은 벌써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자체 인원과 캐나다교회를 이용하는 인원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정을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협력하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될수록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한국의 발달한 의료기술과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전체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주목받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잘 이겨나가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모두가 건강관리 잘 하시고 기도하고 협력하여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나가길 바랍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통해 함께 주님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 11장은 무척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하시며 말씀과 이적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이 마가복음 11장에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원받는 길을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겁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내용이었고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며,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오기를 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의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모든 이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고 죽으심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였고, 주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은,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이 계획하신 3년의 기간을 마치시고 마침내 그분의 사명, 십자가 죽음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11장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이미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계획을 이루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그러니까 함께 읽은 마가복음 11장은 굉장히 중요하고 엄숙합니다. 그리고 긴장감이 있습니다. 성경 마가복음을 처음부터 읽고 묵상한 성도라면, 이 부분에 와서 숨을 멈추며 읽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을 제외한 주인공 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나귀 새끼와 무화과나무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종종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이 주연이 되기도 하고, 조연이 되기도 합니다. 사무엘하 6장에 보면, 법궤를 운반하는 도중에 소들이 날뛰어 웃사라는 사람이 법궤를 손으로 만집니다. 그리고 그는 죽게 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아닌 소들이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열왕기상 17장에는 엘리야를 먹이는 까마귀들도 등장합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다시스로 향한 요나는 물에 빠져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갑니다. 이렇듯 성경에는 여러 가지 사람이 아닌 주연과 조연이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에도 나귀 새끼와 무화과나무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사건은 중요하고 엄숙하고 긴장감이 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또 다른 두 주인공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바라보심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한 가지 준비를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데려오라 하십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주님이 어떻게 그곳에 나귀 새끼가 있다는 것을 아셨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이 미리 사전답사를 하신 것도 아니고, 시장 조사를 하신 것도 아니고, 제자들과 함께 늘 같이 다니셨는데, 어떻게 예루살렘 앞에서 그곳에 나귀 새끼가 있다는 것을 아셨을까? 성경은 여기에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며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은 아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라보고 계셨다는 겁니다. 비록 나귀 새끼가 사람이 아니지만, 주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하며 그 나귀 새끼를 사용하기 위해 바라보고 계셨던 겁니다. 주님은 마을 한 켠에서 말없이 있었던 나귀 새끼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라보고 계셨던 겁니다. 주님은 우리도 아시고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내가 무엇으로 기뻐하고 무엇으로 슬퍼하는지 주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 지난 주에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이 도무지 주님을 만날 방법도 없고, 가능성도 없었는데 결국은 주님을 만나 온전해 졌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라고 했는데, 오늘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겁니다. 내가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나 혼자 외톨이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시는 겁니다. 지난 주 오늘의 양식을 묵상하는데, 3/9일자 내용이 일주일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인데, 할머니를 방문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손주가 할머니에게 여쭤봅니다. ‘왜 할머니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현관에 있어요?’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그것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네가 안전하게 가는지 바라보는 거란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바라보세요. 우리의 삶을 보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까지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공중을 나는 새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놓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그것들을 아시고 먹이신다 하십니다. 들에 핀 꽃이 수고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고, 바라보시고, 그것들을 예쁘게 가꾸신다 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이것들보다 더 중요하지 않냐?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들도 바라보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가만 놓아두지 않는 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 내 필요를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안 보는 것 같아도 아이들을 다 봅니다. 몇 걸음 더 가면,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왠지 아이가 만지면 안 되는 것을 만질 것이라는 것도 다 압니다. 그래서 미리 아이를 막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아는 것이에요. 사도바울은 청년 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바울까지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라보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그는 회심하게 되었던 겁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데, 그것은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되는 겁니다. 이것은 단순히 바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를 주님은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는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로,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이 필요하실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은 예수님이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셨고, 그것에 대한 두 주인공의 반응을 성경은 전해줍니다. 먼저 주님이 제자들을 보내어 나귀 새끼를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덧붙이고 있나면, 2절에 보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라고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저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데리고 오라시는데 그 나귀 새끼는 아직 아무도 누구를 태워보지 않은 나귀 새끼입니다. 그러니까 길들여지지 않는 겁니다. 예전에 TV에서 야생말을 길들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길들이는 사람이 울타리 안에서 뛰고 있는 야생말의 목에 밧줄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재빨리 말뚝에 묶습니다. 그러면 울타리 안에서 야생마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닙니다. 한참을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힘이 빠지면 잠잠해 지는데 그때 그 등 위에 올라탑니다. 그러면, 이내 다시 이리 저리 뛰며 등위에 탄 사람을 떨어뜨리려 합니다. 야생에서 마음대로 뛰놀던 말이기에 길들이기는 여간 쉽지 않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나귀 새끼도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사람을 태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더군다나 무거운 어른이 타고 가기에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필요하실 때, 이 나귀 새끼는 순종합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할 때, 나귀 새끼는 아무런 몸부림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향하신 예루살렘 길을 주님과 함께 합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그 길이 언덕이어서 어린 나귀 새끼가 예수님을 태우고 가기에는 힘이 들었을텐데, 성경은 사람도 아닌 이 나귀 새끼가 주님이 필요하실 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길들여지지 않았고, 아직은 새끼여서 힘도 들고, 불편했겠지만, 그러나 나귀 새끼는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주님이 필요하실 때, 순종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어떻습니까?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주님이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얻고자 하셨지만,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필요하실 때, 드릴 것이 없었던 겁니다. 13절에 보면,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무화과나무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없는 것인데, 주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말씀하시고 후에 그 나무는 뿌리까지 마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포인트는 ‘주님이 필요하실 때’입니다. 모든 것에는 핑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주님이 필요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귀 새끼라고 무슨 핑계가 없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필요하실 때, 순종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주님이 필요하실 때, 그 역할을 행하지 못했던 겁니다. 주님에게 드릴 것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주님은 지금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그 길은 고난이 기다리고 죽음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주님이 필요하실 때,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 것도 드릴 것 없고, 그저 핑계만 대고 있습니까?저는 우리 모두가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철저히 들여다보기를 원합니다. 그저 내 필요에 따라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아닌 주님이 필요하실 때,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내 가정과 직장, 그리고 이 교회 안에서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여전히 핑계대면 주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내 맘대로의 모습으로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께서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에 순종했던 나귀 새끼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신앙은 삶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믿음은 삶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면, 주님의 보혈의 피를 고백한다면, 이제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고 드러나야 합니다. 내게 허락하신 모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기대와 필요를 채워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나 혼자가 아닌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예루살렘 입구입니다. 오늘 등장하는 두 주인공을 떠올려 봅시다. 주님과 그 어려운 길을 함께 했던 나귀 새끼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의 평가를 전합니다. 주님이 필요하실 때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갔던 나귀 새끼는 주님과 함께 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사람이 아니지만, 주님 앞에 순종하는 그 모습을 통해 지금도 많은 신앙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항상 주님의 예루살렘입성을 표현한 그림에서도 주님과 함께 하는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무화과나무는 뿌리 까지 말랐다고 전합니다. 무화과나무는 비록 잎은 무성했지만 그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실 때, 주님께 드릴 열매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결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그 열매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 살아가시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부유하고 권력이 있고, 종교 지도자였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앙의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겉은 화려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거룩했지만, 그들의 중심은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마치 회칠한 무덤처럼, 곱게 치장하고 가려졌지만, 그러나 그들의 중심은 주님이 보시기에 이미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열매가 없어 결국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만난 가난하고 병들고 보잘 것 없었던 사람들은 진심으로 주님을 고백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부분의 기적이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유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시고 그들의 순종과 헌신의 마음을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서있습니다. 이제 내가 두 주인공중 누가 될 것인지는 오로지 나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의 중심이 주님에게 향하고 주님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며, 주님이 원하고 바라시는 삶을 살고자 결단한다면, 우리 모두가 주님과 함께한 나귀 새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함께 가는 참된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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