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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0월 25일
      ·  수정: 2020년 10월 25일

    2020년 10월 25일 [그렇게 살고 있는가?]

    게시판: 이번주 설교

    그렇게 살고 있는가? / 요 9:1-3


    한주간도 평안하게 보내셨나요? 오늘은 10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10월 한달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힘이 되신 주님을 기억하며 고백하는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 속에 새 힘과 능력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10월도 거의 지나고 있고 코로나 사태로 교회에 모이지 못한지도 벌써 일곱 달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며 세계적으로 다시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고, 온타리오 주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만, 그 때까지 모두들 건강하고 안전한 시간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난주에 잠시 광고를 드렸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시간에도 각 가정마다 새로운 소식들이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도 있고, 곧 새로운 자녀를 출산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한국으로 이미 돌아가신 가정도 있고, 새로운 직장을 얻은 분들도 계십니다. 지난 주에는 산이를 잠시 봤는데 많이 크고 많이 똘똘해져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모든 가정의 자녀들은 7개월 동안 폭풍 성장을 했을 겁니다. 비록 함께 대면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진심을 다해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자라나는 모든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 사람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당시 사람들은 구약의 기록에 근거해서 조상과 부모의 복이 자손에게까지 전해지고 그들의 죄가 후대까지 전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징표가 물질과 건강이라 여겼습니다. 얼마나 부유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통해 은혜와 징벌을 구분하고 장애가 있거나 병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을 부모나 본인의 죄에 의한 결과라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과 그들의 사고에 대해 주님은 잘못되었다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는지는 죄와 벌, 혹은 믿음과 은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사고대로라면, 아마도 외모가 출중한 정우성씨가 제일 복이 있는 사람이고, 건강하고 운동도 잘하는 손흥민 선수가 제일 복이 있는 사람일겁니다. 그리고 삼성과 같은 재벌가의 자녀들이 가장 복이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당시 사람들이나 현재의 우리가 이러한 사고를 갖고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바램과 욕망을 하나님의 기준이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부유하고 건강하고 예쁘게 생기고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비교해서 우월감을 갖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신의 바램과 욕망을 신앙과 연결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께 이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구합니다. 대부분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께 구하는 것들이 이 범주 내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충족될 때 우리는 응답을 받았고 은혜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이러한 것들이라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만약 그러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 궁극적으로 그러한 응답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과 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소중하게 태어났다는 겁니다. 비록 남들보다 건강한 몸이 아니어도,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해도, 얼굴이나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은 모두를 소중히 여기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기준과 관점으로 복과 벌을 나누지 말라는 겁니다.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우월감을 갖지도 말라는 겁니다. 사람의 외적인 요인들을 통해 그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인생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태고자 하심이라’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그 사람의 외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고 신앙적인 판단을 내리려 했던 것과는 다르게 주님은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실 일과 받으실 영광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판단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인간의 부유함과 가난함, 병듦과 건강함, 지위의 높고 낮음 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의 욕망을 통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인생의 목표가 되기도 할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는 겁니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내 모습 이대로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그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복이 있는 인생이요 은혜가 충만한 인생이 되는 겁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눈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주님을 반대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추궁합니다. 22절에 보면, 부모는 겁이 나서 제대로 주님의 역사를 말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눈을 뜬 사람을 불러다가 추궁합니다. 30절 이하에 보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전합니다. 이렇게 눈을 뜨게 하신 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9장 본문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38절인데, 그가 앞을 보게 된 이후에 처음으로 주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여, 제가 믿습니다.’ 그는 비록 남들보다 몸이 불편하게 태어났지만 그러나 주님을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통해 변화되고 주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단지 그가 눈을 뜨고 장애를 극복해서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님을 믿고 그의 인생을 통해 주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기에 복이 있는 인생이 되었던 겁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의 인생이야 말로 복이 있고 은혜가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읽고 묵상하면,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지 우리를 향해 질문하는 성경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욕망과 바램을 신앙과 연결시키고 그것들을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해 영광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외적인 요인들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때로는 우월감으로, 때로는 열등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귀한 하나님의 뜻을 인생 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모습 이대로, 내가 처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주시는 복과 은혜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살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이 힘주시고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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