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 눅 5:37-39
오늘은 10월 셋째 주일입니다. 비록 코로나 사태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지는 못하지만, 주님의 날, 주일을 기억하며 거룩하게 보내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바라며, 각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거리의 나무들은 어느덧 붉은 단풍이 되었고 하나 둘씩 떨어지는 낙엽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단풍국’이라는 이름에 맞게 가을 단풍이 멋있는데 그것을 감상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늘 아쉽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가을 단풍을 통해 여러분들도 힐링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무는 항상 겨울을 준비하며 자신의 잎을 다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마침내 봄이 되어 새로운 잎을 다시 맺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나무는 늘 새로운 잎으로 한해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항상 새로운 잎으로 살아가서 그런지 보통의 나무는 오랜 기간을 살아가며 초록색과 향기로 사람들에게 쉼을 주고 안정을 줍니다. 그런데 나무에게 새로운 입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잎들을 다 떨어뜨리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잎을 맺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 매일 새로운 은혜의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늘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사랑과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는 아무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모든 잎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내 삶을 바라보며 잘못되고 거짓된 것들을 회개하며 지워갈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들을 변화시켜갈 때, 주님께서 새로운 잎을 맺게 하실 겁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며 우리의 일상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일과 공부, 그리고 일상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마음대로 식당을 이용할 수도 없고, 최소한의 움직임과 모임만이 허락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언젠가는 끝이 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의 시간이 우리가 새로운 잎을 맺기 위해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들을 통해 더욱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부족했던 믿음을 채워가야 합니다. 잘못된 마음과 삶의 모습은 잘라내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가 끝이 나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혹독한 겨울을 잘 견뎌낸 나무처럼, 새로운 믿음과 은혜로 채워진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잘못된 마음과 모습들을 버리고 포기할 때, 주님께서 그 비워진 자리에 은혜의 선물로 채우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담으라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배경이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27절 이하에 보면, 주님께서 레위라 하는 세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세리는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는데 당시에 많은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그러자 당시 종교지도자라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과 제자들을 비판합니다.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고 기도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지 묻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구절만 따로 떼어놓고 말씀을 나눕니다. 새로운 시대에 주님께 쓰임 받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등의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하시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것들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과 제자들을 요한과 요한의 제자와 비교해서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자주 금식하고 기도했는데 왜 당신들은 그러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요한과 그 제자들에게 필요한 신앙의 모습은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묻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구약 시대부터 전해진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새롭게 요구되는 신앙의 모습을 전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시기 전에는 말씀을 따라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신앙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계시기에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따르고,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주님과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죄인으로 여겨진 사람들이건, 종교지도자이건 어떤 사람이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구약과 요한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예수님이 오신 새로운 시대가 왔는데, 그 시대에 요구되는 신앙의 모습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종교적인 행위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계명과 율법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까지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 하십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저는 서두에 나무가 자신의 잎을 다 떨어뜨리고 혹독한 겨울을 견딜 때, 새로운 잎을 맺게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스스로 잘못된 마음과 행위를 고치고 포기할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여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그저 종교적인 행위나 외적인 모습에 집중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마음이, 내 삶이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더욱 돌아봐야 합니다. 그것이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특별히 코로나 사태로 새로운 시간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들을 통해 예배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새워질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믿음으로, 신앙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신앙, 새로운 믿음의 성도가 되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