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09일 [그리스도의 향기]

본문

고후 2:14 - 17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기본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을 보고, 그리고 감촉을 느끼는 촉감까지, 우리는 그것들을 오감이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기본적인 감각이기에 저마다 싫고 좋음이 분명합니다. 요즘은 TV나 유튜브에서 먹방과 요리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고, 패션이나 음악방송이 많아지고 인기를 끄는데, 그 이유가 그 모든 것들이 가장 기본적인 오감을 자극하고 만족시키기 때문입니다. 외국에 살면서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어릴 적 어머니가 손수 뜨개질로 만들어 주신 니트의 감촉이 기억되는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들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냄새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하고, 그리고 우리를 통해 주님의 향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는 겁니다. 마치 여름에 백야드에서 고기를 구우면 그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지듯이, 그리스도의 향기인 우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퍼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들과, 세상 속에 전해야 할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것이 있을지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전해야 할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냄새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에게 참 생명을 허락하시고 회복시키기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한 복음 사역과 십자가 위에서 모두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십자가 사역,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우리에게 참 생명을 허락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음을 정의할 때, 심장이 뛰는지, 숨을 쉬는지, 그리고 뇌가 활동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정의합니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었다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다른 의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멀어진 존재,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 말합니다. 숨은 쉬고, 심장은 뛰고, 뇌는 활동하지만, 그들 속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룩한 영을 잃어버리고 산다면, 그들은 죽은 존재라 성경은 말합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처음 사람 아담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6절과 17절에 보면,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나 이후에 그의 아내 하와와 함께 아담은 선악과를 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안 죽었어요. 이후에 자식도 낳고 삽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과 멀어진 그 순간부터 이미 그는 죽은 존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가 여전히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을 했어도 그는 죽은 존재였습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한 골짜기로 데려가십니다. 그곳에는 뼈들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전할 때, 뼈들이 하나씩 맞춰집니다. 그리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덮여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갈 때, 그들이 살아납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하나님은 에스겔서 37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내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다시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죽은 뼈와 같은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들 속에 있을 때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로마서 5장 12절에서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렸느니라’ 기록합니다. 곧 죄를 지은 것이 죽은 것이라는 겁니다. 생명을 잃은 겁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 때문에 이미 생명을 잃고 죽은 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 복음과 참 진리를 전하시며 참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더 이상 죄와 사망에 메여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참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 말합니다. 생명의 향기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더 벌고 출세하기 위해, 내가 더 편히 잘살기 위해 죄를 짓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더 편하고 더 누리는 것 같아도 성경은 그런 사람을 죽은 자라 말합니다. 사망에 이른 자라 말합니다. 내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가운데 바로 서고자 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생명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향기가 되어 생명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사실 모두가 다 육체적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어느 때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생명 있는 자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느냐, 아니면 하나님 보시기에 이미 사망한 자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느냐 하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아들 둘을 낳는데 그들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이고 다시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는데 그 이름이 셋입니다. 그리고 그 셋이 낳은 아들이 에노스입니다. 성경은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고, 죄로 인해 죽은 자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에노스 때가 되어서 하나님을 찾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언젠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온 겁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명 있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제가 오늘 믿음의 글에도 적었는데 인생이라는 것이 zero를 향해 간다고 생각됩니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하나씩 숫자를 매겨보기 시작했습니다. 은퇴하기 전까지 송구영신 예배 때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번 남았는지, 연말에 함께 윷놀이 할 수 있는 게 몇 번 남았는지, 주일 예배를 인도하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몇 번 남았는지... 시간이 지나며 그 숫자들은 하나씩 줄어들 것이고, 결국에는 0이 되겠죠.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남았을지, 새해 인사를 드릴 횟수가 몇 번 남았을지, 혹은 여러분들과 차를 마시고, 때론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에는 시간이 흐르며 하나씩 숫자가 줄어들고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0이 될 겁니다. 아직은 숫자가 많이 남은 것도 있고, 여유있어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 zero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소중하고 모든 순간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지금도 벌써 주일날 말씀을 전할 횟수가 하나 줄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렇게 교회에서 예배드릴 횟수가 하나 줄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시간이 얼마나 귀중하고 중요합니까? 결국에는 모든 것들이 0이 되어 아무 것도 나에게 남은 것이 없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리기에 내가 예배드릴 수 있을 때 마음껏 예배드리고,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이 때에 돌아와서 주님의 생명을 회복하고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생명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 냄새를 맡고 그 향기를 간직하는 이들은 생명에 이르게 되고 그 향기를 무시하는 자들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생명의 향기를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우리가 전해야 할 향기는 바로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고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지난주부터 성경공부가 시작됐는데, 요한복음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내용 중에서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등장하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도 등장하고 주님이 주시는 떡을 먹은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을 얻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마다의 삶의 환경은 다르고 생활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 주님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점점 기쁨이 사라지고 만족함이 사라집니다. 도무지 기쁜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기쁜 일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에요. 예전에는 기뻤던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하고 전에는 감사했던 것들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만족하지 못하는 겁니다. 감각이 마비가 되고 더 높은 것,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작은 기쁨들을 잃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고 그들의 감각이 다시 살아날 때, 사람들의 인생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기쁨을 경험하는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람은 밥으로 사는 게 아니라 밥맛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살아 있어 밥맛을 느낄 때 그 속에 기쁨이 있는 겁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 속에 기쁨이 사라지고 기뻐할 일을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 인생의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겁니다. 어린 아이들은 감각이 살아있습니다. 조그만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자다가도 깜짝 놀라고 깨어 있어도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처음에도 아이에게 먹이는 것에 간도 안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점점 자라면서 감각이 무뎌지게 됩니다. 그래서 더 크고 센 자극을 원합니다. 얼마 전에는 라면을 먹다가 너무 매워서 남겼던 기억도 있는데, 사람들이 하도 더 매운 것을 요구하고 더 강한 맛을 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것처럼 더 크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바라다 보니, 주변의 작은 것들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기쁨이 사라지고 작은 것들에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산이가 많이 나았는지 석집사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산이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줬어요. 너무 예쁘고 귀여운 모습을 보다가 저희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꺼내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수십 번을 보았던 사진들인데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어린 정현이와 사무엘이 그립다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 함께 만나고 식사하고 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날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결혼하고 아이들도 가정을 이루게 될 겁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이 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라니까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어도 기뻐하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어도 기뻐해야 하는 겁니다. 잃어버렸던 기쁨들을 하나씩 찾아야 합니다. 내 가정 안에서만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 속에서 기쁨을 찾고,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기쁨을 경험해야 합니다.
 무뎌지고 닫혀있어서 있고 있었던 모든 것들에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금식이나 고행도 이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풍족했던 것들을 멀리할 때, 우리의 감각은 다시 살아나서 작은 것들에도 반응하게 되고, 결국 깊이가 있어집니다. 가장 기본 적인 감각을 살리는 거에요. 너무 많이 먹어서 작은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금식을 하고 나면, 죽 한 그릇을 먹어도, 한 숟가락의 밥을 씹어도 그 속에서 맛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사람들에게, 세상에 기쁨을 전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 먼저, 감각들을 다시 깨웁시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내가 늘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경험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무뎌지고 잃어버렸던 신앙의 감각들을 깨워서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경험하는 삶의 기쁨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의 향기라 말합니다. 내 속에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 채워질 때,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향기 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가득한 그리스도의 생명과 기쁨을 전하는 진정한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좋은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리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향기는 하루 혹은 며칠이 지나면 결국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향기는 내 안에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져 있기만 한다면, 영원히 나에게서 나는 향기가 될 것입니다. 꽃의 향기를 통해 벌과 나비가 모이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꽃이 피고 더 많은 향기가 나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지닌 여러분을 통해 그 향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곳들에 주님의 향기가 전해지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생명과 주님의 기쁨이 저와 여러분 속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전해지기를 축원합니다.

2020년 02월 02일 [몸된 일꾼]

본문

엡 4:11-12

1. 집사헌신예배
 오늘은 2월 첫 주일입니다. 2월 한달도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의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집사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모든 집사님들이 교회와 성도를 위해 더욱 기도하고 봉사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 이 헌신예배를 통해 믿음으로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어제까지 세계적으로 확진자 14,500명에 305명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네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번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인 식당이나 극장, 쇼핑몰 등은 점점 한산해지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T&T CEO 가 뉴스에 나와서 요즘 너무 운영하기 힘들다 인터뷰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모두들 건강에 더욱 주의 하시고 또 이번 일로 인해 힘들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이 발달하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트뤼도 총리나 빌게이츠, 그리고 유명한 연예인도 연결될 수 있어서 그들이 post한 글이나 사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나의 의견이나 찬성, 반대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세계인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염되며, 온 세계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처럼, 나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반드시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있는 성도가 되시고, 특별히 오늘 헌신예배로 드리는 집사님들은 교회 모든 분들에게
믿음의 영향을 주는 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감리교에서 집사 직분은 영구적인 직분이 아닙니다. 매해 마다 당회를 통해 그들의 믿음 생활을 점검하고 집사로서 합당하다 판단될 때 다음 해에도 집사직분을 수행하게 됩니다. 요즘은 교회에 워낙 집사님들이 많고, 심지어는 처음 나온 분들에게도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집사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교회 집사가 되었는지 모르며 집사로 불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사라는 직분은 단순히 호칭이 아니고 교회에서 나에게 맡겨준 귀중한 역할이고 직분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집사로 불리는 것을 더욱 무겁게, 그리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이미 오래 전에 받은 분들도 계시고 우리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은 분도 계시지만, 올해 우리 새길교회는 다섯 분의 교회 집사님을 세우고자 합니다. 2020년 한해동안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해서 주님이 잘 했다 칭찬해주시는 모든 집사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교회-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
 우리가 집사로서, 그리고 성도로서 신앙생활하기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회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가 교회라고 하면, 크고 작은 교회 건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로 교회라는 말의 뜻은 건물이 아닌, 모임, 혹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 에클레시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본래의 뜻은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주님의 말씀안에 살고 그 분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올해 새길교회 집사가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나를 불러 주셨고, 나에게 거룩한 역할을 주셨다라는 겁니다. 그것을 믿는 거에요. 교회를 오래 다니니까 그냥 집사가 되고, 작은 교회 다니게 되니까 집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신 거에요. 그리고 나에게 거룩한 포지션을 주셨는데, 그것이 집사인겁니다. 그러니까 되게 감사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중에 주님이 나를 택하셔서 이곳 캐나다 뉴마켓, 그리고 새길교회로 불러 주신 거에요. 그리고 내 믿음을 봐주시고 나를 주님이 계획에 사용하시고자 집사라는 직분을 허락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참 감사한 거에요. 그리고 무거운 거에요. 다른 누가 나에게 시키고, 나를 불러줬으면 무시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내가 믿는 주님이 나를 불러 주신 거에요. 그리고 나에게 거룩한 역할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거에요. 요즘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고 렌트비도 올라서 힘든데 집사라고 주님이 나를 부르신게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역할을 감당하라고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집사의 직분을 맡기신 겁니다.
 성경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신앙공동체를 하나의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전체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그냥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라고 은혜를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각자 받은 은혜대로 쓰임 받도록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거에요. 11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각자가 받은 은혜대로 사용되도록 부르셨어요.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 교회를 이루는 우리를 몸된 일군으로 부르신 겁니다. 우리의 몸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손과 발과 눈, 코, 입, 귀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장기들이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몸이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기능이 다 다릅니다 .눈이 냄새를 맡는 코의 기능을 할 수 없고, 손이 발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모든 것이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이것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도록 불러 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믿음으로 함께 할 때,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그게 교회라는 겨에요. 여러분 모두가 사명을 갖고 제 역할을 할 때, 우리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겁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특별히 헌신 예배를 드리는 집사님들이 새길교회로 부름받은 분들로서 믿음이 자라나고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대로 쓰임받는 일군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점점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신앙의 모범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이제 집사로 부르심을 받고 올 한해동안 새길교회 집사로서 직분을 감당하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 번째로, 신앙의 모범이 되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저는 신앙은 되물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도 아버지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알 수 있고, 지도자와 왕의 믿음이 그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처럼, 올해 집사직분을 받은 여러분의 신앙은 고스란히 일반 성도들에게 전해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교회의 전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일의 우선순위에 두는 모범이 될 때, 그 신앙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앞으로 집사 직분을 받을 분들이나, 다른 교회에서 이미 집사가 되신 분들이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신앙의 모범이 되는 여러분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교회 전통이 되어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단단한 반석과 같은 교회의 믿음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평소 생활에 있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고자 노력할 때, 그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반드시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결국에는 여러분과 같은 신앙의 모범들이 많아지게 될 겁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에요. 사도행전6장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일곱 명의 집사를 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교회를 이끌어 왔는데 이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어서 함께 일할 믿음의 일군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되는데,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기준으로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되었는지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초대교회 처음 집사를 세우는데, 뭐 다른 것이 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우리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지는 잘 판단할 수 없어요. 그런데 칭찬받는 사람은 알 수 있어요. 그게 누굽니까? 모범이 되는 사람이에요.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집사로 세우라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모범이 되는 사람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우리 다섯 분의 집사님들은 누가 보더라도 신앙의 모범이 되셔서 교회에서와 교회 밖에서까지 칭찬받는 분들이 되시길 진심을 축원합니다.

4. 봉사에 힘써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집사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봉사하기를 힘쓰라는 겁니다. 우리가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은 하기 싫은 일도 하고, 마음 상해도 하고, 맘에 안 들어도 꾹 참으면서 합니다. 그런데 교회 일에는 소홀하고 잘 나서지를 않습니다. 뭔가 함께 하다가도 맘에 안 들면 포기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어서 그래요. 가볍게 여겨서 그래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래서 더 귀한 겁니다. 이미 사람들에게, 혹은 물질적으로 보상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주님이 보상해 줄게 없어요. 이미 받았으니까. 그런데 교회의 일은 누가 보상해 줍니까? 주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쑥스러운데 사람들에게 교회 얘기를 하고 교회를 소개해서 그들을 전도했어요. 그러면, 교회에서 아 세 사람 전도했으니까 일 인당 $100해서 $300입니다. 이렇게 줍니까? 부활절은 더불이라서 일인당 $200입니다. 뭐 이런가요? 그렇지 않아요. 교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무슨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을 봉사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걸 누가 알아줍니까? 주님이 알아주시는 거에요. 그리고 그 주님이 주시는 보상이 하늘에 쌓이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는 겁니다. 마음껏 봉사하라는 거에요. 주님이 count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그걸 믿으며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이름도 없고 빛도 없어도 주님이 알아주시고 주님이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봉사하는 거에요. 얼마 전에 노스욕에 사시는 분인데 그 분이 교회를 옮겼어요. 제가 물어봤습니다. 새로 옮긴 교회는 어떤가요?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괜찮은데 자꾸 뭘 시키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 피해 다녀요. 제가 잘 아는 분이어서 말씀 드렸어요.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나중 되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그렇잖아요. 교회에서 할 일이 있고, 여러분이 참여하고 할 수 있을 때 맘껏 봉사하세요. 나중에는 힘도 없고, 재능도 사라지고 더 잘하고 적합한 사람들이 있어서 하자고도 안합니다. 아무 보상 없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무척 귀한 일이에요. 주님이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라고 은혜를 주시고 재능도 주시고 여러분을 이렇게 불러주셨어요. 봉사할 기회가 있을 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사님들은 봉사하기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5.. 교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교제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기능중 하나가 교제입니다.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인데, 이것은 믿음의 사귐입니다.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저마다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배경과 삶의 모습들, 그리고 상황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셨어요.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 주님의 교회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서로 사귀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귀고 깊은 관계가 되기를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주님이 한 믿음의 공동체로 만나게 하신 성도와 믿음으로 교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교회안에서 믿음의 교제가 이루어질 때,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람들과 관계하고 사귀라고 주님의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믿음의 교제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친목 모임과 다르게 우리는 내마음으로 사귀는게 아니에요. 주님의 마음으로 사귀는 겁니다. 세상 친목 모임은 맘에 안들면 안보면 되고, 싫어서 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 가득 채워진 주님의 마음으로 교회의 성도를 바라볼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들의 아픈 부분을 어루만지고, 감싸주게 됩니다. 그렇게 하라고 주님이 우리를 먼저 불러 주신거에요.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만나셨어요. 그들의 삶의 얘기를 들어주시고 함께 기도하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때로 아픈 부분을 만져 주시고, 때론 사람들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귐의 본이 되어 주신 것처럼, 우리는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와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말이 나고 안 좋은 감정들도 생기고 결국에는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사귀어야 하는 겁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그리스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주님의 사랑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도하며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을 다해 함께 기뻐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특별히 우리 교회 집사님들이 이 일에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기도 많이 해야 하는 거에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기도하며 믿음의 교제를 이루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는 성도, 어려움 속에 있는 성도를 소홀히 여기지 않고 기도하며 먼저 손 내미는 집사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느 누가 우리 교회를 찾아오더라도 따뜻함을 경험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6. 몸된 일군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참 뜻 깊고 의미 있는 날입니다. 모든 집사님들의 마음속에 주님이 주신 집사라는 직분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불러 주시고 여러분을 주님의 일군으로 세워주셨음을 기억하시고 집사라는 직분을 무겁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목회자와 성도를 위해 기도하며 교회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모든 집사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주님의 몸된 일군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01월 26일 [말씀으로 새롭게]

본문

눅 1:1-4

말씀으로 새롭게 / 눅 1:1-4

1. 시작하며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만 사망자 42명, 확진 환자만 1,4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터키에서는 지난 금요일에 6.8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 22명에 부상자가 1,2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폭우로 31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었습니다. 비록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함께 관심 갖고 지금도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인간의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되고 문명이 발달해도 우리는 참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은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2020년 새해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새해 믿음으로 다짐하고 결단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이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어제는 음력으로 설날이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새로워지는 2020년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가끔 유튜브를 통해 과거 좋았던 프로그램을 찾아보곤 합니다. 얼마 전에는 MBC프로그램 느낌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 중에 가출한 청소년과 부모를 다시 만나게 해 주는 코너가 있습니다. “얘들아 행복하니..”라는 프로그램인데 2003년에 방송이 되었던 겁니다. 그 중에 보았던 것은 3개월 만에 엄마와 가출한 딸이 만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 역시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또한 깨달은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3개월 만에 만나는 그 딸을 보며 한없이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몇 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3개월 만에 어머니와 가출한 딸이 만났는데 누가 더 많이 울 것 같습니까? 모두가 예상하듯이 어머니가 더 많이 울더라구요. 이게 제가 깨달은 첫 번째입니다. 어머니는 그 딸을 만나기 전부터 눈물을 보이고 가슴 떨려 하더라는 겁니다. 막상 사랑하는 딸을 만났을 때 딸보다 어머니가 더 많이 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집을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처럼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품으로 오기만 한다면
우리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신명기 1장 31-32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곳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하나님은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집을 나간 탕자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졸이며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믿음이 주님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믿음을 떠나고 신앙을 떠났던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마음이 편치 않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며 주님을 멀리 떠나 있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마음 아파하며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품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제가 느낀 것은 3개월 만에 만난 딸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가 계속 해서 딸에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바로 “엄마 안보고 싶었니?”입니다. 방송하며 계속해서 딸에게 묻습니다. “엄마 안보고 싶었니?” 여러분, 이 물음에는 나는 네가 너무 많이 보고 싶었단다.. 라는 말이 담겨져 있습니다. “엄마 안보고 싶었니?”.... 혹 하나님의 그 뜻을 떠나고 있다면, 앞으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면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물으실 겁니다. “내가 안보고 싶니?” 너무나 우리를 보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어떤 잘못, 어떤 실수도 용서하시며 따뜻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나는 네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단다...’라는 주님의 그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것은 그 어머니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에게 말을 하지....”라고 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그리고 조금만 더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눴다면 어린 청소년이 집을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단순히 집을 나간 아이가 다시 부모와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없다면 그 아이는 다시 또 집을 나갈 수가 있을 겁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그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엄마에게 말을 하지...”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우리의 신앙이 뭔가 문제가 있고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여러분 중에 신앙에 대해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무조건 믿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 예배시간에 맞춰서 교회 나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 잠시 가출한 딸과 부모가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근본적인 해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말씀을 내가 모르고, 그리고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신앙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과연 하나님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며 어떠한 삶으로 인도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만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지 그 말씀을 들어야 감동이 있고 감사가 있고, 믿음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내가 생명력 있는 참된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2. 말씀으로 새롭게
 2020년을 준비하며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한 것들 중 하나가 말씀으로 새롭게 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올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어서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크게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십자가 구원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신 겁니다. 만약 예수님의 사역이 십자가 대속의 사역만 있었다면 그 분은 이 땅에 오셔서 그냥 십자가만 짊어지시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충분하게 사람들에게 선포하시고 말씀을 주시고 그 이후에 최종적으로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사역을 믿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깊이 있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까지 행하셨던 말씀사역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은 멀리하고 십자가 사랑만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새롭게 되었지만 정작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분명히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말씀사역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며 그 분의 말씀으로 우리 모든 성도가 새롭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습관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성경책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진리와 보물을 우리가 캐내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한번 가만히 돌아보세요.
여러분이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묵상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제 함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자 수요일 마다 성경공부 시간을 갖으려 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함께 말씀을 읽고 깨닫고 삶에 적용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위로 받고,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말씀을 통해 반성하고 회개하며, 말씀을 통해 행복해지는 2020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그 말씀이 우리 인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곧 말씀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말씀과 동행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내가 눈으로 인간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모든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지만,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말씀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만나고 싶고, 간절히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봐야 하는 거에요. 우리가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그저 나의 생각과 나의 계획대로 인생을 살아갔지만 신앙을 가진 후에는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되며 살아갑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우리는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자 합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지며 우리 인생이 변화된 것이며 새롭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이라고 했으니까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말씀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며, 우리의 신앙은 바로 말씀위에 세워진 신앙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보면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은 곧 생명이요 빛이라는 겁니다. 말씀이 내 안에 가득할 때 우리는 생명을 회복하는 겁니다. 말씀으로 새롭게 된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생명으로 새롭게 된다는 겁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또한 무언가 움직이고 일을 한다는 겁니다. 말씀으로 새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 가운데 생명이 회복되는 것이며 그 생명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우리의 신앙이 변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인생이 변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된다는 겁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또한 빛이라 했습니다.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그 빛을 따라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이 비춰주는 길을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시편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비춰주는 그 길을 따라 살아갈 때 말씀으로 진정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여러분 자신이 새롭게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들어 알면 되었지 왜 주야로 묵상합니까? 그래야 내 삶이 한결같은 믿음의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밤 낮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라 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한결같은 믿음의 모습을 갖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군인 중에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공수부대원들은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훈련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식하거나 지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본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운동선수들이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는 이유도 어떤 여건 하에서도 흔들림 없이 본능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 역시 어떤 어려움과 형편에 처하든지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시편1장은 또한 말합니다.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열매가 맺혀지면 형통하게 되는 축복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이 말씀으로 새롭게 되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으로 새롭게 되었을 때, 그것은 결코 나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말씀으로 새롭게 된 나를 통해 반드시 나의 가정도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세워둔 내 아내, 내 남편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자녀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셨을 때, 주님이 뭐라 말씀하십니까?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변화되고 새로워진 삭개오를 향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은혜는 단순히 삭개오 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그 가정에까지 이르게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다짐합시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하루에 꼭 한 장씩은 읽고, 마음에 새기며 묵상하며 살아가겠다. 그 다짐을 통해 주님은 여러분을 변화시키는데, 그것은 여러분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과 나의 가정이 변화되는 은혜로까지 이어집니다. 이게 믿음의 원리에요. 마치 물이 흐르듯이, 내가 오늘 묵상하고 새긴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가 내게 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차고 넘쳐서 내 가정에 까지 이르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말씀이 충만한 성도를 통해 그 은혜가 교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고 믿음으로 함께 교제하는 성도들이 새로워집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귀합니까? 올해 여러 가지 계획 중에 반드시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겠다는 계획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2020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3. 마치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설교를 시작하며, 2003년도에 방송된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출한 여중생과 어머니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제 17년이 지난 지금에 당시 그 여학생이 그 때를 생각하고, 그 방송을 저와 같이 봤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입니다. 아마 17년이 지난 지금 당시 그 여학생은 이제 30대가 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들까요? 분명한 것은, 부끄러울 겁니다. 집을 나가 방황했던 시간들이 후회가 될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오늘을 떠올렸을 때, 부끄럽고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여러분 이라면, 주님에게로 돌아옵시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으로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시길 바랍니다.

2020년 01월 19일 [추우니까 겨울이다]

본문

전 3:11-13

1. 서론
 2020년이 시작된지도 벌써 3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전통 명절인 설날이 있습니다. 올해의 다짐들을 점검해 보고, 신앙적으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믿음의 삶이 중요한데 오늘은 전도서 본문을 통해 믿음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 의심 없이 맡기는 삶입니다.
 믿음의 삶이라 하면 먼저, 의심 없이 맡기는 삶을 믿음의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생활하며 믿음의 삶을 스스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모은 돈을 우리는 은행에 의심없이 맡깁니다.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쉽지 않게 생각하면서 나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은행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맡깁니다. 그것은 우리가 은행을 믿기 때문입니다.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음식을 먹습니다. 내가 처음 간 동네의 처음 보는 식당에서조차 아무런 의심 없이 음식을 먹습니다. 음식에 무엇을 넣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음식점을 믿고 있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지금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나의 삶에 함께 하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심 없이 맡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어디를 가든지 아무 걱정도 없고 의심도 없이 모든 것을 맡기며 가듯이 우리 삶을 그렇게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서 아빠가, 혹은 엄마가 운전을 잘 할지,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가는지,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조금만 차가 덜컹 거려도 두려워하며 여러분을 의심한다면, 아마도 굉장히 서운할거에요. 그런 자녀의 모습은 상상을 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 고백하면서, 우리가 만약 그런 모습처럼 하나님을 의심하고, 내 삶을 맡기지 못한다면, 하나님도 굉장히 서운해 하실 겁니다. 아마도 상상을 할 수도 없는 모습일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아무 의심 없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의심하고 맡기지 못하는 삶을 살았어요. 조금만 어려워져도 의심하고 조금만 내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어도 두려워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전도서 3장은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고...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인생이 그렇다는 거에요. 굴곡이 있고, 다양한 것들이 우리 인생 안에 다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웃을 때만 허락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어려움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그런 여러 가지 경우와 여러 때를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것이 때가 있고, 내 인생에도 여러 가지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때를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한다? 의심없이 맡겨야 한다는 거에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뭐다? 믿어야 한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 믿음을 위해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즉 지금 당장의 이익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겁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가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다는 거에요. 인생에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고....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겁니다. 힘드니까 인생이고, 어려우니까 인생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가 인생을 돌아보니, 매번 그 때, 그 때 마다 웃고 울고, 좋았다가 불평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 때에 맞게 아름답게 지으셨다는 것을 믿으며 살라는 겁니다. 의심없이 맡기며 사는 것, 이것이 지혜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올해 하나님께 의심없이 어려분의 삶을 맡기며, 주어지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이 아름답게 만드셨음을 깨닫고 믿음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우리 경험하는 많은 일들 속에 얼마나 많이 불안해하고, 얼마나 많이 걱정하며 살아왔습니까? 그건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마치 은행을 믿지 못해서 돈을 집에 쌓아놓고 사는 것처럼, 우리 속의 걱정을 쌓고 살아가는 거에요. 우리 아이가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어디로 가는지 불안해하고, 잘 가고 있는지 의심하고 조금만 차가 덜컹 거려도 벌벌 떨고 있고, 차가 조금만 흔들려도 두려워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안 그렇잖아요. 불안해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올해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3. 과정이 아닌 결과를 보는 삶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삶은 과정이 아닌 결과를 보는 삶입니다. 좋은 과정이 있어야 좋은 결과가 있고,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이 중요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과정이 없이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요행입니다. 그러나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우리가 모든 과정을 잘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힘들어도 잠도 안자고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힘들고 피곤한 지금의 과정만 바라본다면, 열심히 공부할 학생은 없을 겁니다. 운동선수들이 힘들고 지치고, 때론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더라도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매 순간 다가오는 어려움과 문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결국에는 넘어지고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열매를 바라본다면, 모든 과정이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장 하나님이 그에게 땅을 허락하시지도 않고 안전한 삶을 허락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는 낯선 나라, 낯선 땅에서 힘든 과정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순간 순간의 과정을 본 것이 아니라 결과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보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인생의 열매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인생은 믿음의 인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처음에는 결과를 바라보며, 결단하고 광야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결과를 잊게 됩니다. 그들 앞에 있는 어려움과 문제들을 바라봅니다. 그 과정을 통해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잊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는 과정에 그들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과 전쟁하는 어려움에 그들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은 결코 믿음의 삶이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오늘 전도서가 우리에게 전해주듯이 우리 인생에 참 많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문제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힘든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허락하십니다. 나를 더 겸손히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드시는 시간들입니다. 엎드려 기도하게 하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꾼으로 만드시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속에서 어려움을 맞게 되고, 힘든 일을 경험하게 될 때, 과정이 아닌 결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열매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도 또한 알았도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하는 것, 무엇 때문에 수고합니까? 어러움 때문에, 문제 때문에, 힘든 일 때문에, 근심거리 때문에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 기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본문에서는 어렵고 힘들고, 문제 때문에 인생에서 수고하는데 그것을 통해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통해 행복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겁니다. 인생에 문제가 없고 어려움이 없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기쁨을 누릴 것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 문제를 통해 도움을 경험하는 기쁨, 근심거리를 통해 더욱 믿음이 성장하는 기쁨. 이런 기쁨을 누리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그 과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볼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이 있음을 바라볼 때, 모든 과정을 통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는 겁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추우니까 겨울이다’ 이렇게 정해보았어요.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약간 변형해 보았습니다. 마침 며칠 전부터 날씨가 추워졌고, 어제는 눈도 많이 내렸습니다. 얼마 전에는 cbc라디오에서 날씨를 예보하면서 사회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It's cold because it's winter" 그 라디오를 들으며 내내 생각했습니다. 추우니까 겨울이고, 겨울이니까 춥다. 이건 뭐 당연한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 당연한 명제를 가지고 힘들어 하고 불평합니다. 겨울에 춥다고 불평하고 여름에 덥다고 불평합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우리 인생도 똑같습니다. 전도서가 말하듯이, 웃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찾을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는 것, 이것이 인생인데 매번 이것들 때문에 불평하고 근심하며 산다는 것이 참 어리석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위해 아름답게 허락하신 순간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이루실 결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수고함으로 기쁨을 누리다 보면, 하나님의 선물이 가득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4. 포기하지 않는 삶
 마지막으로 믿음의 삶이란 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나은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바르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전도서가 기록되었을 당시 사람들도 기뻐하며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못하니까 굳이 전도서에서 그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황이 좋지 않을 때이고, 지금 근심이 가득한 때이고, 물질적으로 어려운 때이고.... 삶의 문제들을 놓고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는 겁니다. 우리는 다짐하고 결단했던 것들을 잊고서 지키려는 엄두도 못 낼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꿈도 못꾸고, 신앙의 성장을 위해 노력도 안합니다. 포기해서 그래요. 내 삶이 어렵다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시간도 없고 물질도 없다고 포기 하며 살아갑니다. 그라나 믿음의 삶은 포기하지 않는 삶이에요. 인생에는 많은 문제가 있고, 늘 어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을 위해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 계획하고 다짐하며 포기하지 마세요. 내가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고자 다짐했던 것, 포기하지 마세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전도하겠다 다짐한 것들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상황을 통해 이유를 만들고 변명을 만들지 마세요.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믿음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이에요. 성경은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포기한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아무리 설교를 하고 여러분이 아무리 말씀을 잘 들어도 이미 포기한 것들이 있어요. 바라기는 여러분의 2020년이 이미 포기한 것들을 다시 시도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게으름과 이기적인 마음, 주변의 상황 때문에 이미 포기한 신앙의 모습들을 다시 회복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법륜 스님이 지은 ‘지금 여기 깨어있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결국은 자기 생각’이라는 chapter가 있어요. 여러 사람이 법륜 스님에게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다 자기들이 마음속에 결정을 내리고 결국은 자기 생각대로 한다는 거에요. 이혼을 상담하는 어떤 분에게 ‘그럼, 이혼하세요’ 이렇게 말하니 이제 이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나열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 합니다. 그 분은 이미 마음에 이혼하지 않기로 결정을 한겁니다. 몇 년 뒤에 그 분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똑같이 이혼에 관해 상담을 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스님이 이혼하라 말합니다. 그러자 그 분이 이번에는 "그렇죠? 그게 낫겠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 분은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하고 그대로 행하는 겁니다. 그 글을 보며 참 많이 공감을 했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교회 성도님들이나 사람들에게 목사로서 요구하는 것이 줄어들었습니다. 가령,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나 교회 성도들과의 관계라든지, 신앙생활 하면서 행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별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본인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본인들이 마음의 결정을 하고 있어요. 그러기에 누군가 지적해 주거나 조언에 주는 것보다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다들 뭔가를 결정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어요. 만약 신앙생활에 있어서 포기하고 있고, 해 보지도 않고 시작조차 안하는 것들이 있다면, 신앙적으로 노력하고 수고하기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포기했던 것들을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포기한 마음들을 돌이켜서 수고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선물처럼 가득 채워지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보 믿음의 글에도 적었는데, 지난 주일에는 산이 아빠를 기다리느라 석집사님과 산이가 저희 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산이와 잠시 놀다가 2층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올라갔는데 조금 지나서 아이의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저는 아이가 밑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목사님 금방 내려갈게’ 얘기를 해줬어요. 그런데 잠시 후에 산이가 2층 안방 옷장까지 온겁니다. 아직 걷지를 못하는데 기어서 혼자 2층까지 왔어요. 제가 세어보니 2층까지 15개의 계단이 있어요. 그런데 저의 목소리를 따라 기어서 혼자 올라왔어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 감동이 되었어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단이 있다고 포기하고, 걷지 못한다고 포기하고, 무섭다고 포기하고 처음 가는 길이라 포기하고..... 인생속에 포기하며 살아온 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믿음의 삶은 포기 하지 않는 삶입니다. 주님을 향해 한걸음 나아간다면, 반드시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올해는 절대로 신앙적으로 포기하지 마시고, 이미 포기했던 것이 있다면, 다시 시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5. 추우니까 겨울이다.
 오늘 전도서는 우리에게 참 중요한 믿음의 삶을 전하고 있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모여 하나의 계절을 이루듯이 우리 인생에도 여러 계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혹 인생의 겨울을 경험하며 힘들어 하고 좌절하지 맙시다. 그것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순간임을 기억하며 의심없이 하나님께 그 시간들도 맡겨봅시다. 힘든 순간이 아닌 하나님이 허락하실 인생의 결과를 바라보며, 주님이 이루어가시는 복된 삶을 꿈꾸며 포기하지 말고 나아갑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추우니까 겨울입니다.

2020년 01월 12일 [하나님은 나의 힘 2]

본문

사 12:2

1. 2020년 교회 표어
 강연 프로그램인 Ted에서 Neil Pasricha 라는 사람이 강연한 'The 3 A's of Awesome' 이 있습니다. ‘세가지 대단한 A에 대한 강연입니다. 강연자는 1000 Awesome Things 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소소한 기쁨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말도 안했는데 서빙하는 사람이 음료를 리필한다든지 아니면 마트에서 계산대가 새로 열려서 맨 앞줄에 서게 되었다든지하는 작은 기쁨들을 블로그에 올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어서 Webby award 에서 Best Blog 상을 받고 그가 낸 책이 20주 연속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Neil Pasricha의 부모님은 인도와 케냐 출신으로 40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그렇듯이 언어와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사는 부모님을 보며 그는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블로그를 성장시킨 세 가지 A에 대해 말하는데 첫 번째 위대한 A는 Attitude, 태도입니다. 보충하자면,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그는 강연에서 우리는 살아가며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과 힘든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선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영원히 비관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훌륭한 태도를 가지고 얼마나 힘들던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강연을 들어보면, 그의 부모님은 긍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마트에 가면 그 아버지는 온갖 나라의 온갖 과일과 식료품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즐거워하셨다 합니다. 아마도 그가 첫 번째 자신을 성장시킨 위대한 A로 Attitude, 태도를 말하는 것이 그 부모님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과연 나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삶의 태도를 전해주는 부모가 되어서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우리 자녀들도 신앙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자신을 성장시켰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올해 2020년 교회 표어를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정했습니다. 교회 표어는 단순한 하나의 문구나 구호가 아니라 삶의 태도입니다. 올해 우리가 살아갈 신앙의 자세입니다. Attitude입니다. 우리가 올해 이 고백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단순히 우리 삶의 모습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녀들에게까지 전해지는 은혜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살아가며 맞이하는 많은 어려움과 예기치 못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이 고백이, 이 믿음이, 이 기도가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2020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부족함을 채워주신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고백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이길 힘을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덩치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무엇으로도 이길 수 없는 골리앗을 어린 다윗이 이깁니다. 그가 하나님이 힘이 되심을 믿었던 결과입니다. 다윗이 던진 돌은 그러기에 다윗의 고백이었고, 믿음이었고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에게 이길 힘을 주셨고, 다윗은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로,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지난 주에는 문제가 없는 인생이 없기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게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부족함이 있습니다. 물질이나 건강, 성격, 인성, 재능...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사는 완벽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부족함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인생들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부족함을 인생속에서 어떻게 채워가느냐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어린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믿고 고백하며 골리앗을 쓰러뜨렸어요.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됩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완벽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미 결혼한 우리아라는 장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아이까지 갖게 되었어요. 그의 부족한 부분이었어요.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나중에 그 아이는 죽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며 진심으로 뉘우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허락하십니다. 상징적으로 단순히 하나님께서 아들만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겁니다. 그리고 부정으로 낳은 아들이 아닌 하나님께 고백하며 낳은 아들 솔로몬을 허락하십니다. 이후에 솔로몬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훌륭한 왕이 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 등장합니다. 가나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입니다. 한 혼인찬치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어요. 좋은 음식과 음료를 대접해야 하는데 더 이상 대접할 포도주가 없어요. 부족함이 있습니다. 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부족함을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떻게 채워야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그 상황을 전합니다. 주님께 구했어요. 그리고 종들에게 무엇을 시키시든 그대로 하라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것을 손님들에게 나눠주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줬는데 아주 맛난 포도주가 되었던 겁니다. 여러분, 부족함이 있을 때, 채워야 할 때, 마리아는 주님께 구했어요. 주님이 하실 수 있다 고백하고 믿었던 거에요. 주님께서 항아리에 가득 채우라 하신 것은 그러기에 물이 아니라 고백이고 믿음이었어요. 그것을 통해 부족함이 해결됩니다. 채움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물을 채웠는데 그것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나는 믿음을 채우고, 고백을 채웠는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것에요.

 우리가 살아가며 여러 부족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질이 부족할 때도 있고, 성격적으로 부족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인격의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고, 말과 행동에서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할 때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내가 어떻게 채워가느냐입니다. 주님께 나아갑시다. 주님께 고백합시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믿고 고백할 때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의 문제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내가 돈이 부족한데 하나님을 고백했더니 내게 돈이 생겼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기에 부족한 것들을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오히려 미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내 힘으로는 이 마음에 사랑이 생기지 않아요. 하나님이 나의 힘이다 고백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힘으로 생각이 바뀌고 말이 바뀌고 내 마음속에 부족한 사랑이 생기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속에 자꾸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해요. 하나님의 사람답지 못한 부족함이 있는 거에요. 내 힘으로는 도저히 바뀌지 않아요.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합니다. 올해 우리 표어처럼,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고백합시다.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잘못된 내 마음을 바꾸겠다 결심해 봅시다.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이 바뀌고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점점 바뀌게 될거에요. 그리고 마침내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이 가득 채워진 내 고백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으로 바뀌게 될 겁니다. 올 한해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고백하며 부족함을 채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부름 받은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고백할 때,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나와 내 가족이 잘먹고 잘살다가 죽어서 천국가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 될 수 있고, 처음 동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내 가정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거룩한 소망을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믿음의 소망을 이루어 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계획과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신앙과 믿음에 대한 계획도 있고, 결단도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도 생기고, 힘든 문제도 생겨서 점점 신앙의 소망들이 잊혀집니다. 그리고 작아져요. 신앙생활도 게을러지고, 여러 가지 핑계가 생기고, 삶의 기쁨도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감사의 조건이었던 것들이 점점 불평거리가 됩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나온 날들이 아마 계속 이렇게 흘러갔을 거에요. 그런데 올해는 달라집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 고백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이루어가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은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 꿈을 꿉니다.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곡식을 묶는데 형들이 묶은 단들이 자신의 것에 절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그 일로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리고 노예상에게 팔아 넘깁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도 갇힙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왕의 꿈을 해몽하고 결국에는 왕 다음의 위치인 애굽의 총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와 형제까지도 애굽에 정착하고 결국은 믿음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요셉은 17살에 노예로 팔려가서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데 그는 무려 13년동안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간직하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간직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힘이다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허락하신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택하고 인도해 주신 믿음의 사람들이 애굽에 정착할 수 있도록 요셉을 들어 사용하신 겁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신 꿈 때문에 그가 지난 13년동안의 시간을 어려움속에서 보내게 된 것이 억울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수많은 우연들이 모여서 결국에는 꿈을 이루게 된거에요. 그가 만약 노예로 애굽에 팔려가지 않았다면, 그가 만약 보디발 아내의 모함을 받지 않았다면, 그가 만약 그래서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힘든 시간이었고,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아 시계가 돌아가듯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소망을 이루어가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기적이고 역설이에요. 우리도 살아가며 때론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과정들이 모여서, 그 어려운 시간들이 모여서 오늘날 우리 신앙이 만들어진 겁니다. 하나님의 소망을 향해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겁니다.

 제가 믿음의 글에도 썼지만, 이제 한 달 지나면, 캐나다에 온지 만13년이 됩니다. 요셉은 13년간 고난을 받았는데, 지난 13년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13년의 시간을 모두 설명하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참 많은 우연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오늘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었습니다. 13년의 시간 속에서 어려운 일도 많았고, 힘든 순간들도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들이 주님이 인도해 주신 주님의 시간이었습니다. 우연히 이루어지고 우연히 흘러온 것 같은 일들조차도 주님이 역사하시고 당신이 허락하신 소망을 이루어 가도록 이끌어 주신 기적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지나온 날들도 이와 같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힘들었던 여러분들의 지난 시간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고백했다면, 하나님은 소망의 길로 이끌어 주셨을 겁니다. 우연히 이루어진 것 같은 많은 사건들조차도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서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나온 우리의 시간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하는 2020년에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나아가는 우리들의 소망을 하나님은 이루어주십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거룩한 꿈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올해도 살아가며 때론 어려운 일을 만나기도 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고백을 잊지 않는다면,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위에도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있어요. 하나님을 향한 꿈이 있다는 거에요. 올 한해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뜨겁게 고백하는 교회가 되고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될 때,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는 우리 뉴마켓 새길교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4. 삶의 Attitude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두 주에 걸쳐서 올해 표어인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정한 표어가 아니라 올 한해 우리 모두의 삶의 태도가, attitude가 이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때론 지치고 때론 힘들고, 때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고백과 기도를 통해 이겨나가고 부족함을 채우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소망을
이루어가는 한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20년 01월 05일 [하나님은 나의 힘]

본문

사 12:2

1. 신년주일
 오늘은 2020년도 첫 주일, 신년주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 가지 순서들이 있어서 오늘 말씀은 간단히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2019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예배하는 인생이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해마다 마지막 주일이 되면, 한해를 돌아보며 좀 더 예배를 잘 드릴걸 후회도 하고 주일에 다른 일보다 예배드리는 것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겠다 결단도 합니다. 오늘 이제 2020년 처음 주일을 빠지지 않고 이렇게 교회에서 예배로 모였습니다. 올 한해 예배의 역사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여러분이 올해 세우는 신년계획 중에 주일에 예배에 빠지지 않기가 꼭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올 한해 모두가 예배하는 인생을 사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교회 올해 표어가 ‘하나님은 나의 힘’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힘이 빠질 때도 있고, 힘이 없어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힘을 잃기도 하고,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약을 먹기도 하고 영양제를 먹기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힘이 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서는 주변의 강한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의 종이 되는 아주 혼란한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모두가 힘을 잃은 어려운 상황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모두가 어렵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던 그 순간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고백하자는 거에요.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겁니다. 여러분도 교회 표어 ‘하나님은 나의 힘’이것을 기억하시고 여기에서부터 2020년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이길 힘을 주신다.
 왜 우리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고백합니까?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길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흔히 문제가 없는 인생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모든 인생들 속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차이는 문제가 있고 없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변의 문제만 바라보며 불평하고 힘들어 합니다. 먼저 겁을 먹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물질의 문제가 생기고 건강의 문제가 생길 때, 우리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며 불평합니다.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이길 힘을 주신다는 겁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주십니다. 사무엘상17장에 보면, 블레셋 군데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골리앗이라는 크고 싸움 잘 하게 생긴 장수가 튼튼한 갑옷과 큰 창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 있으면 나와 싸우라 말합니다. 11절에 보면,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골리앗의 모습만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겁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문제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어린 다윗이 그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사울왕 앞에 나아가 자신이 싸우겠다 합니다. 37절에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이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했던 골리앗 앞에서 그가 당당히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리고 그가 가진 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여러분, 골리앗이라는 똑같은 문제를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윗은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고백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이길 힘을 주십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주십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던진 돌은 그냥 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겼습니다.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다윗은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에요.
 저희 아내가 큰 아이를 낳고 부산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를 보러 주일 예배를 마치고 월요일 새벽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고속버스 안에서 너무 배가 아프고 속이 안좋았어요.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날 것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다행히 버스가 휴게소에 잠시 멈추게 됩니다. 저는 화장실로 조심조심 갔어요. 이게 막상 화장실이 가까워오니 몸이 더 반응하는 거에요. 큰 일이 났어요. 그런데 화장실 입구에 휴지 자판기가 있었어요. 휴지가 없으면 안되니까 겨우 동전을 꺼내서 버튼을 누릅니다. 그런데 자판기에서 나온 것은 휴지가 아니라 가그린이었어요. 너무 당황해서 몸에 힘이 풀리며 큰 일이 날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위기 상황일수록 버튼을 정확히 눌러야 하는거에요. 이것이 인생의 법칙입니다. 다윗은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고백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 믿는 거에요. 2020년 올 한해동안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고백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올해 살아가며 어려운 일도 만나고 문제도 만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 믿고 고백할 때,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이길 힘을 주시고 해결할 능력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문제를 놓고, 어려운 상황들을 놓고 간절히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나의 고백이 되고,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인생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갈 때, 여리고라는 큰 성을 만나게 됩니다. 도저히 답이 없어요. 부술 수도 없고, 올라갈 수도 없고, 도저히 넘을 수가 없는 성이었어요. 요즘말로 하면 넘사벽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하루에 모든 백성이 그 성을 한 바퀴씩 돌라는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외치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씀이에요. 당장 무슨 연장을 가지고 성을 깨부숴도 안될 판에 하나님은 성
주위를 그냥 한 바퀴 돌라고 하세요. 여러분,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기도하라는 거에요. 기도하라는 것은 뭡니까? 고백하라는 거에요. 믿으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거에요.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그렇게 했을 때,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뭘 했나요? 그냥 성 주위를 뱅뱅 도는 것만 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기도하기를 원하세요. 믿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고백하기를 원하세요. 하나님은 나의 힘이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다. 내가 고백하고 또 고백한다면, 이길 힘을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제가 사라지는 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이런 기적을 경험하는 한해가 됩시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다 믿고 고백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2019년 12월 29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본문

창1:31-2:3

1. 송년주일

 오늘은 2019년도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번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들 속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생일이라든지, 기념일들을 정하고 그날을 특별하게 보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결혼기념일을 특별히 보내며 처음 사랑하고 서약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그 때의 마음을 되새기기도 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날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은 2019년도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을 통해 올 한해를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되짚어봐야 합니다.

성경의 가장 처음인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십니다. 아무 것도 없고, 그저 어둡고 혼란스런 세상을 질서 있게 만드십니다.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채우셨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구분하시고,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속에 온갖 식물과 동물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일상도 하나님이 만드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2019년도 한해의 시간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으로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예배하는 인생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에 함께 하시고 어려움속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인생이야 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입니다. 부족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내게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우리가 서있는 삶의 자리에서,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인생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올 한해 그렇게 예배하는 자로 살아왔다면, 분명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매순간, 어디서든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정해진 주일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가볍게 여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매 주일마다 우리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처럼, 우리는 일주일에 한 날을 정하고 그날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보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매 시간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 주일, 나의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거룩하고 복되게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인 주일을 통해 내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바쁘게 살아온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 있는지 주일 예배를 통해 다시 한 번 점검합니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속에서도 나를 지키시고 큰 힘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거룩하게 예배하며, 또 다시 시작되는 일주일을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자 다짐하고 결단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에 있어서 주일 예배는 무척이나 중요한 시간입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돌을 세워놓습니다.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가장 끝에, 삶의 끝자락에 돌을 세워놓습니다. 그리고 그 돌을 에벤에셀이라 부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잊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모든 과정을 살펴보니,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가능한 일이라 그들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우시고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예배하는 인생으로 회복됩니다. 누구든지 그 에벤에셀의 돌을 보는 자마다 잊었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내 삶의 끝자락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는 올해 52변의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52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은 52번의 주일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몸이 피곤하고 아프다는 이유로, 다른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맞이한 52번의 주일은 우리 삶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는 날과 같습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 믿고 고백하는 날이 바로 이 주일 예배입니다. 이 날을 통해 우리 삶의 끝자락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시작하는 일주일의 삶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라 믿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52번째 마지막 돌을 세웁시다. 그리고 우리 삶의 끝자락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합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마지막 날에 거룩하고 복되게 하시며 안식하셨듯이 매 주일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복되게 보내는 이 주일을 통해 여러분 모두의 인생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리라 믿습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인생

 두 번째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믿음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어둠과 혼돈 속에서 세상을 만드실 때,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있었고, 모든 식물과 동물들,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성경은 이러한 피조물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동안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내가 그동안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왔는지, 그 분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살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전부 이해하고 알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믿음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었던 겁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힘든 순간도 있었고, 어려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의 인생은 분명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었을 겁니다.

2019년도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읽은 베스트셀러중 하나인 김영하 작가가 지은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가가 여행을 하며 여행에 대한 생각들을 적은 글인데, 그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행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가 계획하고 준비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계획했던 것들보다 더 기억에 남고 더 큰 감동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여행을 가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음식점보다 허름해 보이는 동네 현지식당을 찾아서 식사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음식의 깊이와 맛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가까운 선배는 이집트 여행중에 차 사고를 당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계획한 모든 여행 일정을 진행할 수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의 사고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 같았던 그 시간들 속에서 똑같이 사고를 당한 한국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통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KT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촌 매제는 동남아 여행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꿈을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행은 우리가 계획하고 준비한 것이 아니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통해 기쁨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인생을 흔히 여행과 같다 합니다. 우리가 2019년이라는 인생의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제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해동안 내가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만 내 인생이 흘러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여행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했고,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겁니다. 물질 때문에, 사람 때문에 참 많이 힘들어 하며 한해를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면, 예상하지 못한 경험들이 오히려 나를 더욱 깊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모든 어려움들 속에서 내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걸음을 걸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분명 믿음의 인생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을 살아온 겁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고 문제가 내 앞을 가로막아도, 올해 우리가 살아온 것처럼 믿음의 걸음을 잃지 않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4. 사명을 다 하는 인생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사명을 다 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모든 피조물들에게 역할을 주셨습니다. 저마다의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빛은 빛으로의 사명이 있고, 하늘과 땅도 각각의 사명이 있습니다. 공중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 들에 피인 꽃들 모두 저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명이 있습니다. 만약 빛이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새와 물고기, 동물들이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혼란만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을 만드시며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도 이와 같은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의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거룩한 역할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왔는지 돌아봅시다. 믿음의 가정이 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같이 밥 먹고 한 공간에서 생활하라고 우리에게 가족을 허락하신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서로를 돌보며, 가꾸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내 남편, 아내, 그리고 내 자녀의 신앙이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방관하며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내 가정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되고, 신앙이 되도록 노력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올 한해동안 우리에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과 사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거룩한 역할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사명을 다 하는 인생을 살았다면, 올 한해 나의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입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남한과 북한이 하나가 되어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북한에는 ‘현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인기가 있는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남한의 한 여성이 페러글라이드를 통해 북한에 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가능한 것은 북한의 병사들이 각자의 사명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근무시간에 술을 먹거나 드라마를 보느라 남한에서 여인이 넘어온 것을 잡지 못했던 겁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사명을 다 하지 못할 때,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혼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올 한해동안 내 인생이 그저 혼란한 인생이었다면, 이제 줄을 잡아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대하고 원하시는 사명을 기억하며 거룩한 사명자의 삶을 살 때, 인생의 혼란이 하나씩 질서 있게 바뀌어 갈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거룩한 역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하며 사명을 다 하는 인생이 될 때, 우리의 인생은 분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교회의 성도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연히, 혹은 누군가의 소개로 단순히 이곳에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로서 각자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많은 이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비록 우리 교회가 작은 교회이지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역할을 해 나갈 때,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복된 교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리라 믿습니다.

 

5.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 본문을 묵상해 보면, 첫날, 둘째날, 셋째날...매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매 순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어야 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잠간 믿음이 좋았다가 또 다시 하나님과 멀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믿음의 열정이 있다가 이내 식어지는 인생이 아닙니다. 오늘 은혜받고 결단한 것들이 이제 한주동안 이어지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난 52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약 지난온 시간들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만 채워져있다면, 이제 올 해의 마지막 주일을 통해 다시 한 번 회개하고 다짐합시다. 예배하는 인생, 믿음으로 사는 인생, 그리고 사명을 다 하는 인생이 되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가 아니라, 이 한주간, 매일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61 Park Ave., Newmarket, ON. L3Y 1V9

 Tel. 647-339-0691

  • facebook group